리들리 스콧 감독의 SF 영화 프로메테우스는 단순한 외계 생명과의 조우를 넘어서, 인류 기원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 이야기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영화는 인류가 고대 외계 종족 ‘엔지니어’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가설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진화론적 설명을 부정하거나 대체하려는 듯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 속 인간 창조설은 과학적으로 얼마나 근거가 있을까요? 현실의 진화론, 외계기원설, 그리고 생명창조 연구들을 바탕으로 이 흥미로운 질문을 검토해보겠습니다.
외계 기원설: 영화가 던진 도발적인 가정
프로메테우스는 외계 종족 ‘엔지니어’가 고대 지구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인간을 설계한 존재라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현실에서 ‘판스페르미아(Panspermia)’ 가설과 유사한 구조를 갖습니다. 판스페르미아는 생명의 기원이 지구 외부에서 왔다는 이론으로, 소행성, 혜성, 운석 등을 통해 미생물이 지구에 도달했다는 가설입니다. 과학계에서는 이 가설이 완전히 부정되지는 않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습니다. 다만, 1984년 남극에서 발견된 화성 운석 ‘ALH84001’에서 생명 흔적이 발견됐다는 주장은 논란을 일으켰고, 이후 NASA의 일부 과학자들은 미생물 운송 가능성에 대해 제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또한 2020년대 들어 탐사선들이 혜성과 소행성 표면에서 유기물, 아미노산, 물의 흔적을 다수 발견하면서 ‘생명의 재료’가 우주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생명체 설계자’의 존재로 연결되지는 않으며, 영화처럼 고등 외계 종족이 인간을 ‘디자인’했다는 생각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철학 혹은 신화에 가깝습니다.
진화론과의 충돌: 영화적 상상과 과학적 증거
현대 생물학은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공통 조상을 가진다는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유전적 증거, 화석 기록, 해부학적 유사성 등 수많은 과학적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하며, 150년 넘는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보완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제시된 인간 창조설은 이러한 과학적 접근을 일종의 ‘설계이론(Intelligent Design)’으로 대체합니다. 이는 종교계에서 일부 주장하는 이론으로, 복잡한 생명체는 무작위적 진화로는 설명되지 않으며 어떤 ‘지성적 존재’가 개입했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과학계에서는 설계이론을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를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합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인류의 DNA가 엔지니어와 완전히 동일하다는 설정은, 실제로는 과학적으로 매우 불가능합니다. 현대 유전체학에 따르면 인간은 침팬지와도 98.8%의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약 2억 개의 염기쌍 차이가 존재합니다. 인간과 전혀 다른 기원을 가진 외계 종족이 동일한 DNA를 가질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깝습니다. 즉, 영화적 상상은 흥미롭지만, 현재까지의 과학적 발견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생명창조 기술: 현실의 가능성과 한계
‘인간을 설계할 수 있는 외계 종족’이라는 콘셉트는 오늘날 우리가 연구 중인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또는 유전자 조작 기술(CRISPR)과도 연결됩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세포 단위에서 인공 유전체를 합성하고, 일부 박테리아 수준의 생명체를 ‘제작’하는 데 성공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제넨텍(Genentech), Craig Venter 연구소 등은 ‘인공 유전자’를 조합해 살아 움직이는 단세포 생명체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이는 생명의 ‘설계’가 완전히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복잡한 유기체, 특히 인간처럼 정교한 생명체를 실험실에서 설계하거나 창조하는 일은 여전히 먼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생명윤리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됩니다. 영화에서 ‘데이빗’이라는 인공지능은 창조된 존재로서의 정체성 혼란과 반항을 보여주는데, 이는 인간이 창조자가 되었을 때 겪게 될 도덕적 딜레마를 상징합니다. 과학기술이 생명을 다루게 될 때,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흥미로운 가정을 통해 인류 기원의 본질을 되묻는 영화입니다. 외계 존재에 의한 창조라는 설정은 과학보다는 철학, 종교, 신화에 가까우며, 현실의 진화론과는 충돌합니다. 그러나 합성생물학, 유전자 조작 기술 등의 발전은 ‘생명 창조’에 대한 상상이 점차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에 선 이 주제를 더 깊이 생각해보고, 인류가 기술의 한계를 어디까지 넘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