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테넷(Tenet)은 ‘시간 역행’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전 세계 관객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놀란 특유의 복잡한 서사 구조와 과학적 이론을 섞은 연출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과학자와 전문가들로부터 "현실 과학과의 충돌"이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테넷에서 사용된 시간 개념이 어떤 과학적 기반 위에 놓였는지, 그리고 영화가 오해하거나 왜곡한 부분은 무엇인지 집중 분석해 봅니다.
시간개념의 왜곡과 혼동
테넷에서 사용된 핵심 개념은 '시간 역행'입니다. 이는 시간여행과 유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론입니다. 영화는 '역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물질이나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경험하도록 설정합니다. 즉, 사물을 '거꾸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자체의 시간 흐름이 반대로 흐르도록 만든 것이죠.
그러나 이 설정은 과학적으로 보면 매우 불분명하고, 물리학적으로는 여러 오해를 낳습니다. 시간에 대한 현대 과학의 이해는 상대성이론과 열역학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합니다.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은 중력과 속도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상대적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반면, 열역학에서는 시간은 ‘엔트로피의 증가’에 따라 정의됩니다.
테넷은 이 두 개념을 혼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론적 근거가 약해지고 현실과의 괴리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는 엔트로피가 역행하면 시간도 역행한다고 가정하지만, 실제로 엔트로피는 시스템의 무질서를 나타내는 지표일 뿐, 시간 그 자체를 조절하는 수단은 아닙니다.
게다가, 인간이 시간을 역행하는 동안에도 호흡이나 사고, 신체 기능이 정상적으로 유지된다는 설정은 비과학적입니다. 만약 시간의 흐름이 거꾸로라면, 뇌의 신경 작용과 혈류 역시 역으로 작동해야 하며, 이는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이론적 고찰: 과학의 어디까지 적용됐나
영화 테넷은 실제 과학 이론들을 상당 부분 참고하여 설정을 구성했습니다. 특히 양자역학, 열역학 제2법칙, 인과율(Causality) 등이 주된 기반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이론들을 단편적으로 차용하거나, 과도하게 단순화해 일반 대중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흔한 오해는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는 설정입니다. 이는 영화적 장치로서 훌륭하지만, 현실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한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는 자연 상태에서 항상 증가한다’고 명시합니다. 이 법칙은 거시적인 우주와 자연의 모든 물리 현상을 지배하는 기본 원리입니다. 이 엔트로피를 인위적으로 감소시키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으며, 미래에도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영화 속 시간의 역행이 특정 인물에게만 적용된다는 설정도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현실에서는 시간은 공간과 함께 ‘시공간’이라는 구조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물질은 동일한 시간 흐름 속에 존재합니다. 특정 인물이나 물체만이 다른 방향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설정은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양자역학에서 일부 입자는 시간 대칭성을 보이긴 하지만, 이는 극미의 입자 수준에서만 적용되며, 인간이나 자동차와 같은 거시적 객체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즉, 테넷은 과학 이론을 극단적으로 확장해 영화적 설정으로 전개했지만, 실제 과학은 그러한 확장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 과학적 오류 분석
테넷은 복잡한 구조와 고급 과학용어들을 사용했지만, 실제 과학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여러 가지 명백한 오류가 존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총알 역행 장면입니다. 총알이 과거로 되돌아가면서 자동으로 총구로 들어가고, 그 반작용으로 사람이 밀려나는 장면은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현실에서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즉 뉴턴의 제3법칙이 성립합니다. 어떤 힘이 작용하면 그에 상응하는 반대 방향의 힘이 생깁니다. 하지만 시간 역행 상황에서는 이 법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영화에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며, 오히려 장면을 위해 법칙이 무시된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역행 중인 인물이 ‘보통 사람과 싸우거나 충돌하는 장면’도 과학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반대인 두 물체가 충돌하면 그 충돌 결과는 어떻게 측정되고 기록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관객에게 혼란을 주며, 과학적으로 타당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오류는, 영화가 과학 이론을 결정론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양자역학의 핵심은 ‘확률’과 ‘불확정성’인데, 영화에서는 미래가 확정된 듯이 묘사되며, 시간의 흐름은 단지 기술로 조작 가능한 요소로 보입니다. 이는 과학 이론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표현입니다.
테넷은 대중적으로 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도한 훌륭한 작품이지만, 과학적 사실과 이론을 무리하게 영화적 설정에 끼워 맞추면서 여러 오해를 유발한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 속 과학적 설정은 현실을 충실히 반영했다기보다는, 창의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서사적 도구'입니다. 이를 감안하고 본다면,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과학의 경계를 더 깊이 탐색하고, 그 한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과학과 영화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도구이며, 테넷은 그 경계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감행한 작품입니다.